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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umis AI가 요약한 글
- 자녀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는 부모들의 수치심과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과 고민을 드러내며 타인의 행동을 쉽게 판단하는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진정한 어른이란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이 글을 통해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1편에 이어서...
생각: 처음 사는 삶일 뿐이라는 자각이 우선된다면
미국에서의 연구이기는 하나 자녀들의 과외 선생님을 찾는 과정에서 확인된 건 부모님의 수치심과의 연관성이었다 한다. 부모로서의 정체성은 자녀의 성공 및 실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자녀의 성적 부진이 곧 자신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실패의 신호로 해석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그분들은 본인이 살면서 가지고 싶었거나 가까이라도 가고 싶었던 욕망을 금전적, 학력의 차이로 좌절하고 포기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기에 부모로서, 선배로서, 지나가던 나이 든 어른으로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전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 유일한 20대 여성에게 대신 전달하려 시도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야기를 건네는 이의 진정성과 의도, 내용이 얼마나 진실했는지가 핵심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에는 대화의 방향이 내가 아닌 이의 삶을 향해 있다는 점, 그렇기에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말을 꺼내는 이를 조금은 바라봐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여유야말로 이 시대의 어른이라면 응당 갖추고 드러낼 수 있는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 모두 처음 사는 인생이다. 처음 사는 20대였고, 40대이며, 부모의 역할을 처음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해를 해줄 것도,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더욱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돌아봄에 대한 얘기에 가까워 보인다.
장황하게 글로 적었지만, 비슷한 내용을 해당 대화방에서 직접 공유한 바 있다. 많이 긴장되었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나와 같은 연배인 40대 연예인 분의 활약(?)을 확인하는 내내 '아 살면서 정말 진심으로 이렇게 간절하게 내가 저분의 절친이었으면 좋겠다 바란 적이 있었나, 당장 전화를 걸어 저 대화를 끊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그 순간의 나 또한 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렇게 쉽게 판단하고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공유했고 이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 해당 상황에 대한 후회와 고민을 멈출 수 있게 해 준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었다.
이 분에게 있어 나의 불완전한 이야기 중 무엇이 감사하게 경험되었을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떳떳하다 할 수 있을까... 다시 생각의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